본문 바로가기
영화추천

울지마, 톤즈 수단의 슈바이처 고 이태석 신부

by 굿딜리버리 2023. 1. 21.
반응형



1. 울지마, 톤즈

2010년 개봉한 울지마, 톤즈 (Don't Cry For Me Sudan)는 고 이태석 신부의 삶을 기억하며 담은 다큐멘터리였습니다. 구수환 감독이 작품에 참여하였고 상영시간은 91분이 되는 전체 관람가의 영화였습니다. 원래 본 영화는 영화로서 제작되었던 게 아니었다고 전해졌습니다. 2010년 4월에 방영이 되었던 KBS 스페셜의 다큐멘터리에서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라는 제목으로 방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호응이 워낙에 높았고 의미가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상으로 다시 편집이 되어 공개되었다고 했습니다.
다큐멘터리에는 이태석 신부님이 활동하셨던 톤즈라는 마을과 그 마을에 있는 브라스밴드, 그리고 학교가 주로 등장했습니다. 특히 제목이 '울지마, 톤즈'가 된 데에는 그 마을의 문화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톤즈에서 살고 있는 딩카족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 딩카족의 아이들이 이태석 신부의 죽음을 보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제목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특히 종교영화로서는 상당한 흥행을 거두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단 몇 개의 공간에서만 상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44만이 넘는 관객들이 관람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제작한 KBS의 구수환 피디는 한국 가톨릭 매스컴에서 대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미국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받았던 기록도 있습니다.

2. 고 이태석 신부

고 이태석 신부는 1962년 10월 17일생으로 부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광주 가톨릭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이탈리아 로마 살레시오대학교에서 신학을 석사과정으로 공부했습니다. 가톡릭에서 불리는 세례명은 요한이라고 전해집니다. 그가 수단에서 있었던 기간은 2001년부터 2008년까지였습니다. 파견 봉사활동으로 톤즈 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의 행적은 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타종교, 무종교인들에게까지 감명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가 활동하면서 좌우명으로 삼았던 말씀은 마태복음 25장 40절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는 계속적인 의료활동 중에 휴가차 2008년 10월 한국으로 귀국하여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대장암 4기라는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암 선고를 받고도 톤즈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크셨다고 합니다. 결국 47세의 나이로 선종하셨습니다.
그의 삶은 짧다면 짧았지만 이후로 방영이된 다큐멘터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2018년에는 남수단 대통령 훈장 추서를 받기도 했습니다.

3. 고 이태석 신부의 수단 제자

고 이태석 신부의 제자였던 토마스 타반 아콧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태석 신부는 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리며 연속적으로 계속되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헌신을 다하셨습니다. 병원을 세우고 의료 봉사활동을 펼치신 것이었고, 이는 앞선 내용에서도 확인하셨을 것입니다. 그때 이태석 신부님이 토마스씨와 존 마옌 루벤씨에게 한국에 가서 공부해볼 생각이 없냐는 권유를 하셨다고 합니다.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였습니다. 이들은 수단 어린이 장학회의 도움을 받아서 2009년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인제대학교에 있는 의과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들이 한국에 온 이후에 이태석 신부님이 암으로 소천하셨습니다. 슬픈 소식을 들었지만 이태석 신부님의 정신을 되새기며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에 매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가서 의사로 환자들을 돌보며 살고 싶은 그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먼저 토마스씨가 노력 끝에 의사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2018년에 있었습니다. 실기시험에서 탈락을 맛보기도 했지만 토마스씨는 재수를 하며 최선을 다한 노력을 해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온 지 구년만에 의사 면허증을 따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본 이야기는 연합뉴스에서도 기사로 다루었을 만큼 우리에게 감동적인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반응형

댓글